할말이없습니다

아직 비가 오네

파편 2008. 3. 23. 23:45

그날이 오면은   - 김종삼
꽃집에서   - 자끄 프레베르

창문밖으로 아직 비가 내리고 있고, 나는 방안에서 기어나갔다가 기어들어왔어.
비내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귓전에 맴돌고 있어.
이제 비내음을 맡을 수 있는 코는 나에게 없는거 같애.
이 코는 지독한 악취를 너무도 오래 맡아서 비내음을 잊어 버린듯해.
잘은 모르겠지만 난 이공간에서 왜 이래도 자주 배설을 하는걸까?
그래 아마도 나에겐 이 공간밖에는 없는거 같애.
지치고 의욕이 없는 짐승 한마리의 상태를 표현할 공간이 여기 뿐인 듯해.
한달의 기간동안 짐승을 쓰다듬어 주던 손길은 이제 영향력을 잃은듯해.
생각해 보면 그 손길은 단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었던 모양이야.
그렇다는건 그 짐승을 이제 어디로 보내야 그러한 호기심으로 살게할 수 있을까?
길가에 뿌려진 생선 비린내 만큼이나 그 짐승에게선 악취가나.
텅비어있는 머리에서는 썩은 생선 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무거운 심장에서는 시체가 썩어가는 냄새가 나.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어, 삶의 계획표가 아닌 죽음의 계획표를 세워보는건 어떨까?
그런 감상적이고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을 매일매일 되풀이 하고 있지.
후두까기 인형이 호두과자 만드는 소녀를 사랑해 준다던가 그런식의 유치한 상상들을 매일해.
비내리는 소리가 경쾌해서 웃음이 나왔어.
우산을 벗을 용기 따윈 없어진지 오래라서 비소리를 들으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지.
참 좋은 소리야. 톡톡톡 툭툭툭
아무리 많은 해가 지나도 똑같은 위치에서 비내리는 풍경을 감상하는 나를 알게됐어.
아마도 끝임없는 의미생성이 아니면 내가 이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거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짐승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짐승이 되기 위해서 단어놀이를 좀 했지.
비, 푸른색, 해바라기, 바람, 길에서 주은 팬던트, 빛나, 피샤, 고로케, 등등
밤마다 마음속으로 입밖으로 이야기해. 그래 나한텐 빛나 너가 있지. 너가 있어서 다행이야.
이런 쓰잘데기 없는 의미생성이 아니었다면 짐승이 존재한다는걸 어떻게 감지할 수 있었을까?
지금은 어떻게 감지하고 있는거지? 알 수가 없어.
그래서 그냥 비내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미소를 짓고 있어.
나란 인간 참 웃겨, 죽음따위 하나도 무섭지 않다면서 징그러운거 무서운거 하나도 못보고 겁도 많고,,
단단한 돌처럼 찔러봤더니 잘 안들어가는 걸까? 아닌데, 풍선인데,
당신이 찌르면 빵 터지고 당신이 후 불면 휙 날라가 버리는 풍선인데...
생각해보면 인간이란 참 웃겨, 비효율적이고 모순적이야.
이글을 끝까지 읽는 인간이 있을까? 이런게 징그러운 단어들의 연속인 글을 다 읽을 인간이 있을까?
처음에 말해줄껄 시체썩는 냄새가 나니깐 코 막고 읽으라고...
참 좋은 날이야, 날씨도 선선하고 빗소리도 들리고 비내음은 모르게 됐지만 참 좋은 날이야.